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80호 | 2008.02.14

노동자민중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불안한 노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시대, 정부가 내놓은 효도방안?

정부는 고령화사회에 대비한다는 취지로 5년여 간의 논의 끝에 지난 4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제 2008년 7월이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및 65세 미만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이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고 (요양)시설이나 집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가족이 간병하고 있으면 특별현금급여도 탈 수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료, 정부지원, 이용자 본인부담금으로 재원이 마련되며 이 과정에서 본인부담금은 전체 비용의 20%정도를 부담하게 된다. (재가서비스는 15%)당장 6월부터는 장기요양보험료율 고지서가 발송되고, 건강보험에 가입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징수하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5대보험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7월, 그러나 제도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TV광고처럼 모두가 긍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안의 국회처리 과정에서 여러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학계 등은 법안의 졸속 추진과 비민주적인 준비과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이 6개월 정도 남은 현재, 서비스 대상자는 노인인구 3%에 불과하고 서비스 대상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충족률은 60%를 겨우 넘고 있다. 전체 국민의 1%도 안 되는 극소수의 서비스 이용대상(실제로 노인인구의 3%만이 서비스혜택을 받을 수 있다. 100명 중 3명, 그럼 나머지 97%의 노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및 협소한 급여범위 또한 부실한 보험제도의 탄생을 예고할 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누구나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시대에 내놓은 정부의 방안은 오히려 정부에 대한 불신만 불러오는 꼴이 되고 있다.

서비스혜택의 관건인 공공인프라가 부족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관건적인 사항은 무엇보다 ‘공공인프라’다. 전문가들은 요양서비스로 직접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결정적으로 ‘인프라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는 거의 전무하며, 앞으로 제도 시행까지도 공공인프라 구축을 위한 계획은 없다시피 하다. 지금으로서는 공공(!)인프라는커녕, 민간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전체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노인요양시설의 지역간 불균형, 재가노인시설의 지역간 불균형 같은 문제는 보건복지부도 스스로 인정하는 사실이다.(요양보호사 및 장기요양기관 인프라 확충설명회, 보건복지부, 2007. 11. 30) ‘07.6월말 기준으로 232개 시군구 중 요양시설 충족률 80% 이상은 90개, 충족률 50% 미만은 80개에 이른다. 또한 지역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재가노인시설이 농어촌에서 크게 부족하여, 재가복지시설은 충족률 50%미만 시군구가 92개, 재가시설이 없는 시군구가 11개, 주․야간보호시설이 없는 시군구는 61개, 단기보호시설이 없는 시군구는 150개에 이르고 있다.
현재 시급한 것은 TV광고가 아니라, 지역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방안, 특히 공공시설/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지역서비스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공공기관/인력간 연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공공시설 구축계획은 전혀 없고 대부분 민간위탁이나 민간의 시설구축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뿐이며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 또한 단시간임시계약직으로 채용될 처지다.

공공인프라의 부족으로 어떤 문제점이 야기될 것인가?

상황이 이러한데도, 보건복지부는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시장화'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상정한 채 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정부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공적인프라 확충이 부실한 지금 그대로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장기요양제도의 공공성과 요양서비스 질이 담보되지 않은 영리업체가 난립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은 민간기관에서 무분별하게 제공하는 엉터리 요양서비스를 받게 될 위험성이 있다. 이는 전 국민의 건강한 노후를 위한다는 법의 본래 취지에 결코 부합되지 못한다.
노인요양서비스를 민간에 맡겨버리는 것은 해당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지금의 제도는 실제로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노동자들의 희생, 이들이 저임금·단시간노동자의 매우 열악한 처지로 전락해버릴 위험과 직결된다. 많은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사업인 요양시설이 100% 민간위탁 될 것이 예상되는 지금 상황에서, 결국 요양시설은 효용성과 운영비용을 삭감한다는 명분으로 종사노동자의 근무시간 연장, 저임금 등의 열악한 처우를 강요할 것이다. 이미 시범사업에서도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등으로 인해 요양보호사들이 자주 이직하고, 이는 서비스 이용 노인과 가족의 불만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재가요양기관에서 근무하는 요양노동자들은 시급 단시간근로에 받는 임금은 월 60만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여기에는 이동시간과 이동에 소요되는 경비가 포함되지 않고, 대기시간, 요양서비스 제공 후 기입하는 보고서 기입시간 등의 업무에 대해서는 임금이 지불되지 않게 되어있다. 결국 노인요양서비스의 시장화는 요양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요양노동자와 국민의 희생으로 제도를 만들 것인가?

한국 정부가 모델로 삼은 일본 개호보험제도는 제도 시행 이후 노인요양서비스의 공급기반이 강화되고 서비스체계가 합리화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시장원리에 따라 언제라도 철수가 가능한 영리기업에게 의존하면서 실제로는 오히려 불안정한 서비스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서비스공급기관의 부정, 부패사건이 일어나고 기관들이 대거 취소되면서 ‘개호난민’(요양서비스를 받다가 하루아침에 서비스를 못 받는 이들)이 대거 발생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미 많은 헬퍼(재가 요양노동자)들이 월급노동자에서 시급노동자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다.
더불어 이러한 경우, 이용자의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서비스의 질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안정적이고 제대로 된 요양서비스를 위해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민간시장화와 저임금 단시간근로 등 열악한 요양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결국 인력부족과 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하여 실패한, 일본개호보험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고지원은 20%인데 비해, 국민부담은 보험료 부담에 본인부담금까지 20%를 부담해야 한다. 한 달 100만 원짜리 요양시설을 이용한다고 치자. 본인부담금 20만원, 식대(보험적용이 안 된다!) 20만원, 기저귀 등 위생재료비 15만원, 모두 합쳐 최소 50-60만원은 있어야 시설이용이 가능하다. 그나마 이것도 소득이 있는 집이나 해당되지, 저소득층 노인들은 아예 꿈꿀 생각도 못 한다. 사회양극화의 현실은 노인이 되어, 죽는 날까지 비참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요양서비스의 필요성이 급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대에 비해, 국가적 책임과 재정투자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급여를 아예 금지하고 본인부담금을 10%이하로 낮추는 것, 그리고 국고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만이 국민의 부담을 덜고 실질적인 제도의 혜택을 제공하는 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공공장기요양시설의 부족과 낮은 국고지원, 협소한 서비스 이용대상과 급여범위, 과도한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통제방안의 부재, 장기요양 종사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서비스 질 저하 등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는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오히려 전사회적인 혼란과 불만을 야기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정부는 수요 대비 국공립시설을 50%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인프라 확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노인요양서비스에 대한 공공시설 확충안을 제시해야 하며,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통해, 전문가 및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서비스 대상 확대 및 급여 범위 확대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돌봄서비스를 확대하여 경증 이하 대상자에 대한 단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경증 대상자로 서비스 이용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국고지원 확대방안 등 이용대상자 확대를 위한 중장기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셋째, 장기요양종사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서비스 표준화 및 질 개선과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안정적인 요양서비스 시행을 위해 종사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등 장기요양종사노동자를 월급제 정규직 상시고용으로 규정화하고 임금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서비스 질을 표준화하고 질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넷째, 국민부담을 증가시키는 본인 부담율을 인하하고 비급여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필요한 경우에는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차상위 계층의 본인부담을 없애고 법정 본인부담율을 10%이하로 낮추어야 한다. 또한, 본인부담금이 증가하지 않도록 요양시설의 식대 급여화 및 비급여를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운영하는 등 비급여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 생애 최후의 권리를 쟁취해내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사는 것, 노후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은 모든 국민의 바램이자 권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빈곤이 심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늙는 것에 대해 더욱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현재 제도는 미래사회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노인요양서비스를 시장화시켜 국민들의 권리와 요양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
서비스 수혜를 직접 받게 될 노인도, 당장 보험료를 내게 될 국민도,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노동자도, 그 어느 누구도 진정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름뿐인 제도를 원하지 않는다. 민주노총, 공공노조, 참여연대, 여연을 비롯하여 보건의료단체연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빈곤사회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장기요양보험제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2월과 3월 국제워크숍을 통해 독일과 일본제도의 사례와 교훈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실제 제도시행을 전후로 서비스실태조사를 통해, 제도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등 대정부투쟁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실제로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혜택을 누리고 노인들이 행복한 노후를 맞으며, 종사 노동자들이 노동의 보람을 키워가는 요양제도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법 시행이 아니라, 전 국민과 요양노동자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늙으신 부모님 걱정, 나의 노후가 걱정이라면 더 이상 정부에 내 불안한 노후를 설계하도록 맡겨두지 말자.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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